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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각자의 아름다운 마무리 - 고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을 추모하며
  • 기사등록 2021-12-23 17: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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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

오혜련 각당복지재단 회장

*이 글은 '새가정' 11월호에 실린 원고를 글쓴이의 허락을 받아 재수록 하였습니다. 편집자





난 8월 30일 한국 최초로 호스피스교육과 죽음준비교육을 시작하였던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이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존경하는 시어머니셨다. 나는 어머님의 삶과 임종 과정에서 과연 ‘사람은 살아오던 대로 죽는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였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스스로 결정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로 잰 듯 원하시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님은 웰다잉을 몸소 실천하셨고 좋은 삶과 죽음의 모델을 남기셨다. 

 

어머님은 30년 전,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던 ‘죽음’을 양지로 꺼내어 공론화시키고, 죽음준비교육을 시작하여 웰다잉의 개념을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심으셨다. 어머님이 죽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아버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면서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그는 슬픔과 충격에 압도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에 매몰되지 않고 죽음을 객관화하고 이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창설하여 종교지도자, 해외의 죽음교육 석학들, 의학자, 학자들과 함께 죽음이란 무엇인지, 좋은 죽음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지속하였다. 또한 죽음준비교육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전국적으로 활동하게 하였다. 30년이 지난 요즘 초 고령사회를 앞두고 죽음, 웰다잉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필요성이 인식되면서 이 선각자의 혜안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구상 시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시에서 ‘죽음! 너는 나와 한 탯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해 연구하고 사색해온 많은 시인, 철학자들은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죽음은 나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삶의 유한성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지고 진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인식할 때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이 세상에 온 의미가 무엇인지,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통찰하게 된다. 

하루하루의 삶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며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인식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좋은 삶을 살려면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죽어가는 환자들 수백 명을 인터뷰하고 죽음에 대해 수많은 책을 남긴 엘리자벳 퀴블러 로스 박사는 그의 저서를 통해 많은 말기환자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보니 체면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또는 용기가 없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가 축적되어 내 삶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리고 죽음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미래나 과거에 대한 걱정이나 미련으로 현재를 소홀히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 후회해도 이미 늦을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삶은 가장 중요한 실존의 문제이고 죽음은 실존의 마감이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을 위해서도 철저하게 준비를 하면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데,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죽음의 순간에 대해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 아무런 준비 없이 무섭다고 피하기만 하다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가? 


어느 날 죽음이 갑자기 닥쳐온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죽음준비는 갑자기 되지 않는다. 유언서를 쓰고 장례방식을 미리 정해놓는 것,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는 것은 내가 내 죽음의 주인 되는 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고령자들만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삶이 좋은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할 때, 어려서부터 죽음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현재에 충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


어머님은 몇 달 전 지병인 신장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버킷리스트에는 몇 가지 꼭 이루고 싶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적으셨다. 그 첫 번째가 가족수첩을 만들어 자손들에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생일들이 각 페이지에 한명씩 적혀있는 이 수첩은 서로의 생일을 꼭 챙기며 우애 있게 살라는 마지막 당부였다. 


유산에 대한 처분을 담은 유언장은 작별모임(Farewell Party) 때 공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본인이 임종을 맞이하기를 원하였던 경기도 용인의 동백 성루카호스피스를 직접 방문하여 둘러보고 원장님께 자신의 마무리를 미리 부탁해 두었다. 

 

언제든지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매일의 삶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 8명, 손주와 손주며느리, 사위 13명, 그리고 증손주 9명, 총 30명의 이름을 순서대로 부르며 매일 기도하였다. 은준관 목사께서 오래도록 준비한 TBC 성서연구 공부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던 어느 날 밤 방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온몸을 꼼짝도 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부러진 뼈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등록되어 있음을 의료진에게 알리고 무의미한 연명의료 조치들은 하지 않도록 부탁하였다. 

 

다행히 수술 후 회복이 잘되어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얼마 남지 않은 신장기능이 급속히 저하되었다. 의식은 뚜렷하지 않았고 이제 의사결정은 가족들 몫이 되었다. 본인이 원치 않던 투석을 할 것인가 호스피스로 모실 것인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어머님의 바람대로 아들들은 호스피스를 택했다.


호스피스로 옮기고 나서 상태는 오히려 놀라울 만큼 호전되었다. 응급투석을 위해 삽입되었던 관도 제거되었고, 관장으로 뱃속도 편해졌다. 병원소속 간병인들이 팀을 이뤄 깨끗이 목욕을 시켜드렸다. 상태를 관찰해가며 영양제와 수액, 진통제 등이 적절하게 투입되었다.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고맙다…’ 였다. 세상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 떠나가실 때 까지 자식들은 침대 옆에 둘러서서 찬송가도 많이 불러드리며 진심어린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온힘을 쏟아 살아온 한 거인의 103년의 삶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떠나라’는 걸스카우트 창시자 베이든 폴 경의 말씀이 삶의 모토이기도 했던 그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하루하루 충실하게 이웃사랑, 나라사랑, 하나님사랑을 실천하며 사셨다. 


그리고 호스피스와 죽음교육을 이 땅에 씨 뿌리신 분답게 마무리까지 완벽한 준비로 남겨진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충실한 삶을 살면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소망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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