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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선 

뿌리인문학자

문자인문학 강사(타타오 뜨락)

서예유튜버(타타오 캘리아트)







오늘의 주제는 아주 쓸모가 풍부한 단어입니다. 바로 질병(疾病)인데요. 여러분이 아주 많이 쓰는 단어지요?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단어는 인생 길에 너무도 중요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갈만 합니다.


병(病)이라는 한자의 형제뻘 되는 한자가 병 질(疾)입니다. 합치면 질병(疾病)! 질(疾)을 먼저 쓰는 이유는? 그게 더 빨리 더 쉽게 인체에 쳐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질, 학질, 토악질... 이런 증상들은 빠르게 다가왔다가 쉽게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병들 녁



그런데 이 질은 병들어 기댈 녁(疒)이라는 부수가 공통점이죠? 이 부수가 들어가는 자가 수백개인데 다 질병 관련 한자들입니다. 병들어 기댈 녁(疒)이라…당신도 아프면 힘이 빠지고 힘들면 뭔가에 기대게 되죠? 자! 여기서 깊이 숨 한번 쉬자고요. 여기는 숨 쉬는 인문학입니다.


질(疾)은 무슨무슨 질에서 나옵니다. 우리 말에 수많은 ~~질이 있죠? 이게 다 영혼이 담기지 않은 자동화된 행위를 뜻합니다. 그게 처음에는 특별히 나쁠 건 없는 행위였어요.



즉 습관화된 일상의 일들에 손질, 바느질, 가위질, 칼질, 붓질, 양치질, 망치질 톱질 등이 있는데 이런 것은 꼭 나쁠 것은 없지만 싱싱한 창조성까지는 느껴지지 않는 자동화된 일들입니다. 저도 붓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붓질에 멈추고 싶진 않습니다. 


그 안에 우주적 본성을 담아 창조하고 싶지요. 어떻게 보면 ‘질’은 인간의 표면적인 일이지 신이나 만물의 영장 스러운 일이라고 보기엔 거리가 있습니다. 


표면적인 일은 물질적, 동물적, 육체적 이라는 뜻입니다. 딸꾹질이 그렇고 물질도 그냥 겉으로 보이는 것을 주로 이르죠? 계집질은 어떻습니까? 오입질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본성이 머얼리 사라져 버린 어둡고 비루한 단어입니다. 


본성과 본능을 동일시하지 마세요. 본능은 동물도 곤충도 가진 것이지만 본성은 신적인 성품, 근원우주적 성품을 뜻합니다. 그 본성을 보는 것이 견성(見性)이며 그 본성을 깨닫는 게 각성(覺性)이며 그 본성에 완전히 통하니 바로 성통(性通)입니다. 



본성과 하나되어 공업을 완수한다-이게 성통공완 또는 성통광명이며 그것이 홍익인간과 함께 우리 민족의 근본이념인 거 아시나요?


                                                    성통공완


그 본성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람은 미혹에 빠져 자꾸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고 마는데 그런 행위를 ‘짓’이라 하며 그런 행위가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길이 난 상태를 ‘질’이라 합니다.


선생이 선생의 존재목적을 상실했을 때 선생질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곁눈질을 하는 것도 바른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입만 열면 욕이 나오는 게 욕질이죠? 사람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것은 이간질입니다. 


폭력으로 이어지면 주먹질이요 발길질이지요. 생명을 잡아채는 손맛을 느끼겠다고 낚시질을 하지요? 하긴 그 미끼를 물겠다고 고기는 입질을 하지요. 정성을 들일 일에 돈만 써서 때우려 함을 현질이라고 합니다.


본성과 멀어지면 그 멀어진 만큼 우주의 섭리와 간격이 생기게 되는데 그러면 당연히 몸에도 문제가 생기니 그러면 몸이 최적화되지 못하여 이것저것에 기대는 일이 생깁니다. 그게 병들어 기댈 녁(疒)의 근원입니다. 기댄다는 게 꼭 침대나 쇼파에 기대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약에 기대고 병원에 기대고 종교에 기대고 수많은 정보에 기댑니다. 그런 식으로 외부의 무엇에 기대는 것은 당장 좀 나아지는 듯한 효과는 줄 수 있으나 근본적인 처방은 아닙니다. 습관화된 나쁜 짓을 멈춰야 하고 바보짓을 그만 둬야 하며 의미 없는 뻘짓을 중단해야죠. 안팎의 싸움질을 끝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혹의 안개 자욱한 세상을 사는 이 타락천사들-인간은 그렇게 집착을 쉬고 본성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외부의 무엇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다 보면 가벼웠던 질(疾)은 오장육부 속으로 퍼져가며 길을 내는데 그러면 이제 병(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병이 깊어지면 뼛속의 층까지 침범하는데 그걸 보고 병이 골수에 깊어졌다-고 하며 치유불능으로 치곤 합니다.


‘질’일 때 해결하지 않으면 ‘병’이 되어 해결하기가 상당히 힘들어 집니다. 오장육부에 병이 되었다는 건 진정 반성해야 하는 일입니다. 병이 골수까지 깊어진 이는 반성으로는 모자라고 참회해야 할 판입니다. 자기 본성을 너무도 멀리 했다는 뜻이거든요. 



누구는 간암에 걸리고 누구는 위장병에 고생하며 누구는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 담배도 안 피운 여인이 폐암에 걸리고 결핵에 걸리며 술도 안마신 남자가 간암 간경화로 드러눕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에 삿대질을 하죠. “하필 왜 내가…!!!” 이러면서 말입니다.


사람은 늘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하늘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아니면 멀어지고 있는가?

순천자흥順天者興이요,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는 옛 말씀은 딱 그 부분을 가리킨 것이지요.

내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지 땅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자신의 습관들을 적어 놓고 자세히 살펴보세요. 특히 휴일, 한가한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게 짓이고 질이라면 당신의 앞길에 각종 질(疾)과 병(病)이 예약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짓이 아니고 질이 아닌 행위가 뭐가 있을까요? 도무지 짓도 질도 붙지 않는 단어들을 떠올려 보세요. 독서질? 공부질? 봉사질? 명상질? 헌신질? 감사질? 배려질? 수련질? 예술창조질? 그런 행위에는 전혀 짓과 질이 어울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언제나 치우침이 아니며 조화로우며 소중한 결실을 주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우주의 본성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라는 고귀한 생명과 시간은 그런 일에 바쳐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끝>

https://youtu.be/7sbohTw5U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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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30 18: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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